[공모전]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 8. 아리엘르 -

2019.10.18 06:03 조회수 91

윌리엄이 안내받은 건물의 외양은 교회 본건물을 본 따 지은 듯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닥부터 천장에 이르기까지 순백색의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간이 나타나며, 

눈앞 맞은편 벽의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건물의 내부는 10개의 기둥으로 받쳐져 있는데, 각 기둥은 땅에 맞닿는 부분인 ‘기부’와 천장에 맞닿는 부분인 ‘주두’가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벽에는 욕탕을 밤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일정 간격으로 횃불대가 걸려 있었다.


또 벽에는 세로로 긴 큰 창문들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특수처리를 하여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 방식인 듯했다.


바닥의 차가운 대리석 타일을 느끼며 걸어 들어가면 목욕을 할 수 있도록 물이 가득 찬 욕탕이 나타난다.


욕탕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면 매우 화려하고 웅장한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마 일신교와 관련된 그림인 것 같았다.


욕탕의 물은 탕 양 끝의 구멍에서 뿜어져 나왔는데 아무래도 게레치트호의 호숫물을 끌어들여 사용하고 있는 듯했다.


탕에서 사용하고 남은 물은 탕 중앙 바닥의 중앙 구멍을 통해 빠져나갔다.


윌리엄은 마치 고대 왕국의 왕이라도 된 양 우쭐해 하며 탕에 몸을 담갔다.


욕탕의 물은 따뜻하다기보단 기분 좋게 뜨거워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 제격이었다.


윌리엄은 몸이 노곤해지는 것을 느끼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어 갔다.


우선은 여행을 떠나기 전의 핑귀시아에서의 삶이었다.


당시의 그는 그저 시골의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자경단에서 훈련을 받고, 마을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특이할 것 없는 인생.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 꿈을 무시한 결과, 여동생이 불치의 병에 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발단이 되어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윌리엄은 여동생의 근황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현재 살아 있는가? 

내가 여기로 올 것을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안젤린이 여동생을 낫게 하는 법에 대해 말한 것 보면 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알렉시아는 어떤 삶을 살고 있나? 자경단 승급시험에 합격했을까?


여동생 벨은 잘 보살펴주고 있을까? 

자신의 여동생을 억지로 던져두다시피 맡겼던 것을 생각하니 윌리엄은 다시금 알렉시아에 대해 미안함을 느꼈다.


다음은 앤이었다.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초원을 헤맸던 그녀는 결국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


그 후 그녀는 윌리엄의 부모 밑에서 메이드로서 일하게 되었다.


앤, 그녀는 메이드 업무에 잘 적응했을까?


윌리엄은 부두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앤이 자신을 등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그녀의 숨결이 볼을 간질였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말없이 자신을 더 세게 감쌌던 앤의 그 힘이, 그 감각이 문득 다시 느껴져 오는 듯했다.


  ‘이런, 너무 오래 있었어.’


윌리엄은 일어나 물을 닦은 뒤, 옷을 챙겨 입고, 건물 밖으로 뛰쳐 나갔다.


한밤중의 스산한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윌리엄의 몸을 에워 감싸며 상쾌함을 주었다.


윌리엄은 예배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요한 예배당 전체를 난연한 달빛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은 그 찬란한 빛 안에서 꿇어앉아 기도드리는 한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기도에 몰두하고 있었다.


윌리엄은 감탄했다.


  “아직도 기도하고 있는 건가.”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목욕하러 들어갔던 것은 2시간 전쯤이었다.


만약 안젤린이 그녀가 말했던 대로 바로 기도를 시작했다면, 

무려 2시간 동안이나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되는데 정말 대단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


윌리엄은 그녀의 의지에 탄복하며 오래도록 그녀를 지켜보았다.


마침내 그녀가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몸을 돌려 윌리엄을 향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완전무결하며 미의 이상, 그 자체였다.


게레치트호를 연상케 하는 호수 빛 푸르른 눈, 눈과 같이 하얀 살결, 혈관이 비칠 듯 맑고 투명한 피부, 어깨를 살며시 덮는 풍성한 금색의 머리카락, 희고 가녀린 목덜미, 귀여운 두 어깨, 기다란 손가락, 그리고 노출을 최소화한 사제복임에도 드러나는 몸의 굴곡 그리고 선,


이 여성이야말로 아드노셀의 삼 여신 중 가장 아름답다고 칭해지는 셋째 여신 푸투라의 현신과도 같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요.”


상쾌하면서도 따뜻한, 부드럽고, 정확한 발음의 목소리.


그녀는 마치 윌리엄을 처음 보는 양 인사를 했다.


윌리엄은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늦게 나온 것을 돌려서 말하는구나 싶어 머쓱해진 나머지 그녀에게 평상적인 인사를 건넸다.


  “기분은 좀 어때요?”


  “좋아요. 푹 자고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면 기분이 뿌듯해지죠.”


  “푹 잤다고요..?”


윌리엄은 이상함을 느꼈다.


설사 자신이 목욕하는 동안 잠을 잤다고 해도, 해봐야 2시간이다.


원래 사제는 잠을 적게 자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안젤린이 적게 자는 편인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이 시간에 교회에 방문하는 분은 오랜만이네요. 새벽 기도이신가요?”


  “어... 네?”


그녀가 해맑게 미소 지었다.


  “대단한 믿음이시네요! 새벽 기도를 나올 정도로 부지런한 신자는 지금껏 없었어요.”


윌리엄은 머리를 긁었다.


아무리 늦게 나왔다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로 무시하면 누구라도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기분이 언짢아진 윌리엄은 빈정대기로 했다.


  “뭐, 신자도 아닌데, 기도하러 왔겠어요?”


그녀의 얼굴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그럼 이 새벽부터 어쩐 일로 오신 건가요?”


  “왜 오긴요... 당신 때문에 온 거죠!”


  “저 때문에 이런 새벽부터 오신 건가요?

...그랬군요... 제가 뭔가 잘못했었나요?”


윌리엄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잘못이 자기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여자는 이렇게 한 치도 지지 않으려는 것인가.


이건 속이 좁은 것인가 아니면 지금껏 다양한 군상을 만나며 체득한 언변인가.


표정마저 정말 윌리엄을 모르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다.


결국 윌리엄은 살짝이지만, 화를 내고야 말았다.


  “정말, 생긴 건 예쁘면서 어떻게 그렇게 속이 좁은 거죠? 너무하시네요. 진짜!”


윌리엄이 말을 마친 순간, 그녀의 새하얀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 예뻐요? 진심이신가요?


아무래도 예쁘다는 앞쪽에 마음이 꽂혀 뒤쪽은 들리지도 않은 것 같았다.


윌리엄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그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혼까지 하신 분이 왜 이러실까!”


그녀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결혼을 하지 않았는걸요.”


  “그럼 아까 한 말은 다 거짓말이었어요?!”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새벽기도는 미혼자도 드릴 수 있어요?

물론, 시리앙마르에는 다양한 종교가 있기에, 기혼자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종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희 일신교는 상관없어요.”


  “아니, 안젤린 씨! 지금 농담할 때가 아니에요!”


윌리엄이 외쳤다.


그러자 그녀가 멈칫하더니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다.


그 순간, 윌리엄의 뒤로 차분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전 농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안젤린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예? 어?”


윌리엄이 당황한 채로 고개를 돌리며 양옆의 여자들을 번갈아 봤다.


비슷하다 못해 자세히 ** 않으면 구분이 쉽지 않을 정도로 닮은 여인들이 눈앞에 서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안젤린 쪽이 좀 더 성숙하고 농염했고, 다른 쪽은 앳되고 귀엽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안젤린이 입을 열었다.


  “이쪽은 저의 딸, 아리엘르입니다.”


아리엘르라 소개를 받은 여자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조용히 인사했다.


안젤린이 말을 이었다.


  “너무 늦으시기에 저도 목욕을 하고 온 참입니다. 목욕탕은 어떠셨나요? 물 온도는 적당했나요?”


하지만 윌리엄에게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윌리엄은 제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끊임없이 옮겼다.


현재 상황 파악과 자신의 오해로 인한 이 사태를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를 열렬히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착각해, 처음 만난 소녀에게 예쁘다느니, 속이 좁다느니 지껄이며 화를 냈다.


즉, 혼자만의 기 싸움을 하며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했으며, 타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윌리엄의 이런 내적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엘르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기쁘게 재잘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이분이 조금 전에 저에게 예쁘다고 했어요.

어머니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어머니를 제외하곤 저보고 예쁘다고 한 사람은 이제껏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랬다. 

아리엘르는 일생의 대부분을 둘레 400m의 작은 섬, 터일섬에서 지내왔고, 그에 따라 지금껏 만나 온 사람도 한정적이었다.


그중 대부분이 신자거나 병을 치료받기 위해 교회를 찾아온 환자들이었고, 

이들로서는 아리엘르에게 예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칭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젤린이나 아리엘르는 신성한 직무를 수행하는 신의 종이자 딸들이기에, 

이들에게 외모를 칭찬하거나, 추파를 던지는 것은 크나큰 죄악으로 여겨져 온 것이다.


타 국가에서 온 환자들도 혹 신께서 노하셔서 병을 치료해주지 않으실까 걱정하여 조심하는 판에, 

종교를, 신앙을 중시하는 시리앙마르 국민들이야 말할 필요 있으랴.


결국 이는 본토에서도 같은 실정이었기에, 봉사나 선교 여행과 같은 때에도 그런 사적인 칭찬은 전혀 듣지 못한 아리엘르였던 것이다.


안젤린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아리엘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론이지. 아리엘르는 그 누구보다도 예쁜 아이란다.”


아리엘르가 활짝 웃었다.


그 티 하나 없는 순수한 미소에 윌리엄은 가슴이 뛰며, 지금껏 느낀 적 없던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윌리엄은 아마 어제 도적단을 와해시키고, 뭘 먹거나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먼 거리를 달려 터일섬까지 와 밤까지 새면서 쌓인 피로 때문이리라고 생각했다.


안젤린이 윌리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그대에게 신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신의 말씀?”


  “윌리엄 씨, 신께서 그대에게 동쪽, 케임드웨이브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케임드웨이브에 가서, 그 뒤엔 뭘 하나요?”


  “일단 케임드웨이브에 가면, 신께서 안내해주실 것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케임드웨이브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윌리엄은 별다른 대꾸 없이 수긍했다.


윌리엄은 미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우선은 침대에 누워 푹 자고 싶었다.


계속 쌓여온 피로가 윌리엄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동이 터 하늘이, 세상이 밝아지고 있었다.


윌리엄은 우선 자야겠다고 한 뒤, 아리엘르의 안내를 받아 침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교회 문이 강하게 열리더니, 한 남자가 소리쳤다.


  “살려주십쇼! 환자가 많습니다!”


남자의 등 뒤엔 들 것에 누워있는 중환자부터 가벼운 찰과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환자가 모여있었다.


안젤린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환자가 많군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그 남자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이게 다 터무니없는 전쟁 예언 때문입니다.

전쟁 준비로 치안이 불안해지자 도적들뿐만 아니라 몬스터들도 소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게 다 그들과 싸우다 상처를 입은 자들입니다!”


  “알겠습니다. 부상이 심한 환자부터 봐 드리겠습니다.”


안젤린이 아리엘르를 조용히 쳐다봤다.


이에 아리엘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엘르가 안젤린에게 다가가다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곤 몸을 돌려 윌리엄을 말없이 쳐다봤다.


윌리엄은 매우 피곤했기에 처음엔 아리엘르의 시선을 무시하려 했으나, 

그 간절한 눈빛에 못 이겨 결국 잠을 포기하고 그녀들을 돕기로 했다.


  “윌리엄 씨, ‘에가스 가루’를 세 포 가져다주세요.”


  “예, 가져다드리죠.”


안젤린과 아리엘르는 이런 일을 자주 겪어본 듯 아주 능숙하게 환자들을 치료해갔다.


반면, 약학 지식도, 별다른 치유 능력도 없는 윌리엄은 그저 허드렛일을 하며 그녀들을 도울 뿐이었다.


윌리엄은 진료를 도우며 그녀들의 치료 방식을 관찰했는데, 그녀들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첫째로, 일반적인 의원에서 하듯 붕대로 지혈을 하거나, 약초를 바르거나 먹이는 방식이었다.


둘째 방식부터가 특이했는데, 그녀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환자의 치유를 명령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명령이 끝나는 순간, 상처가 아물고, 몸이 건강을 되찾았다.


셋째 방식은 그저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었는데,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음에도 환자의 몸이 치유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윌리엄은 의문이 들었다.


두세 번째 방식만 이용하면 모든 환자를 쉽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첫째 방식도 사용하는 것인가.


윌리엄은 이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들이 너무 바빠 보였기에, 나중에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드린 약 꼬박꼬박 드시면 3일 후면 다 나을 거예요. 살펴 가세요!”


  “감사합니다! 아리엘르님!”


마지막 환자가 떠나갔다.


어느덧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어두운 하늘엔 커다란 달이 휘영청 떠 있었다.


아리엘르는 지쳤는지 평소 기도하던 위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윌리엄 씨.

덕분에 평소라면 지금보다 2시간은 더 걸렸을 치료를 이렇게 빨리 끝낼 수 있었답니다.”


아리엘르가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리엘르 씨야말로 고생 많으셨어요.” 윌리엄이 대답했다.


아리엘르가 지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저에게 격식 차려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반말로 충분하답니다.”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배당에 침묵이 찾아왔다.


어색한 공기가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윌리엄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고개를 돌리며 안젤린을 찾아보았지만, 

안젤린은 이미 목욕을 하러 가버렸고, 예배당엔 윌리엄과 아리엘르 둘만 남아있었다.


아리엘르는 그저 말없이 윌리엄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아리엘르가 침묵을 깨뜨리고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제 옆에 앉으셔도 좋아요.”


아무래도 아리엘르는 윌리엄의 모습에서 강한 피로를 느낀 듯했다.


이에 윌리엄은 고맙다고 하며 아리엘르에 등을 맞대고 앉았다.


  “어머, 바로 옆에 앉으셔도 괜찮은걸요.”


하지만 윌리엄은 민망했는지 하하 작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카락만 만져댔다.


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이동하며, 찬연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윌리엄과 아리엘르에게 쏟아졌다.


아리엘르가 자신의 두 무릎을 몸으로 끌어당겼다.


  “터일 섬에서의 하루는 어떠셨나요...? 물론, 쉬지도 못하시고 고생하셨지만요.”


윌리엄이 웃으며 대답했다.


  “도적단이랑 목숨 걸고 싸우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

여러모로 즐겁기도, 신기하기도 했고.”


  “죽고 죽이는 살육의 삶...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전 그런 삶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어느 정도로 힘든지 감도 안 오지만요...”


아리엘르의 목소리에서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윌리엄은 대답을 잘못했다 싶어 재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터일 섬의 교회는 정말 웅장하고 대단한 것 같아! 범접할 수 없는 공간 같다고 할까!”


아리엘르가 조용히 웃었다.


  “그렇네요. 그래도 윌리엄 씨나 다른 사람들에겐 이 교회가 웅장하고, 범접할 수 없는 공간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일생을 함께한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랍니다.”


윌리엄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다들 신을 어려운 존재, 두려운 존재로만 여기지만, 

항상 주님과 함께 살아온 저에게 신은 한없이 아늑하고, 따뜻한 분이시거든요.”


  “신인가...”


윌리엄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던 중 윌리엄은 문득 아까 묻기로 다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아리엘르,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제가 아는 한 대답해드리겠어요.”


  “환자들을 치료할 때, 기도하거나, 신의 이름으로 명령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 의원처럼 약초를 쓰는 경우도 있던데 그건 왜 그런 거야?

전부 명령이나 기도로 낫게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좋지 않아?”


아리엘르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신의 뜻이에요. 환자를 보았을 때, 신께서 어떻게 치료하라고 말씀을 해주시죠.

그러면 저희는 그대로 행할 뿐이에요.”


  “그럼, 다른 방식으로 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낫지 않거나, 낫더라도 결말이 좋지 않죠.”


  “결말이 좋지 않다니?”


  “그 환자의 인생을 봤을 때, 지금 바로 나으면 오히려 그로 인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든가 그런 것이에요.

예를 들자면, 약을 받아 간 마지막 환자 기억하시나요?”


  “응, 3일 치 받아 갔지.”


  “그 사람은 3일에 걸쳐서 치유되는 것이 최선인 거예요. 만약 그 자리에서 바로 치유가 되었다면...”


아리엘르는 잠시 눈을 감고, 말을 멈췄다.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아리엘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일 해가 밝아오면 다시 전장에 투입된 후, 생명을 잃었을 것입니다.”


윌리엄이 놀라워하며 대답했다.


  “와, 즉, 단순히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보고 최선의 길을 가게 하는 거구나!”


  “네, 맞아요.”


  “그럼, 하나만 더 물어볼게.”


  “네, 얼마든지.”


  “꼭 명령한다거나 할 때,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해야 하는 거야? 그게 좀... 비효율적이라고 할까.”


  “비효율적이라 말씀하심은...?”


  “그게.. 예를 들자면, 마치 내가 전투를 하면서 ‘흉부 찌르기!’, ‘칼등치기!’, ‘구르기!’라고 외치는 거랑 같다랄까... 

그건 뭔가 이상하잖아?”


  “그건... 주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치료, 물론 가능해요.

하지만 그랬다가는 사람들은 신께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저에게 감사하게 될 거예요.

마치 제가 제 고유 능력으로 치료한 것인 양... 그렇기에 이를 방지하고자 일부러 신의 이름을 외치는 것이죠.”


윌리엄은 아 소릴 내며 납득했다.


  “결국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구나.”


  “그렇습니다.”


윌리엄이 크게 하품을 했다.


신경 쓰였던 것이 전부 해결되자, 몸이 나른해지며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리엘르가 말을 이었다.


  “신의 뜻...하니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어요.”


  “말해줘야 할 것...?”


  “지난 새벽에, 어머니께서 윌리엄 씨에게 신의 뜻을 전달하셨었죠.”


  “응...동쪽 케임드웨이브에 가라고...”


  “그건... 윌리엄 씨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에요. 신께서 저에게 윌리엄 씨를 따라가 도우라고 하셨답니다.”


윌리엄은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물론 신의 뜻이기에 저는 윌리엄 씨를 따라갈 거예요. 

하지만, 윌리엄 씨, 아시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생 이 섬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답니다. 

나쁘게 말하면 세상 물정을 잘 몰라요. 게다가 전투능력도 없죠.

어쩌면 윌리엄 씨에게 무거운 짐만 될지도 몰라요. 

윌리엄 씨... 답을 정해놓곤 말씀드리는 것이 어이없을지도, 괘씸해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신의 뜻이라 해도, 불신자인 윌리엄 씨에게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강요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무례할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답니다.”


아리엘르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며,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은 잠결에 그녀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고개를 떨군 채 졸음에 취해있었다.


아리엘르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무언가 각오를 한 듯 작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윌리엄 씨, 제가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윌리엄은 잠에 취한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 부탁해... 아리엘르...”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틀 동안 혹사당한 윌리엄은 더 이상 피로를 참지 못하고 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승낙의 대답을 들은 아리엘르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으나, 윌리엄은 고개를, 끌어안은 무릎에 파묻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리엘르가 일어나 윌리엄의 얼굴을 보았다.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 윌리엄의 얼굴에 가득했다.


아리엘르가 미소를 지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윌리엄 씨.”

 


밝은 달빛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따스한 밝음 속에서 한 소년·소녀가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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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PC 게시글 등록창 상에서는 줄이 보기 좋게 나뉘었는데, 업로드 한 후나, 모바일 상에서는 잘 모르겠네요.


좋아요와 댓글은 사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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