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당신의 곁에 있어도 될까요? -1. 꿈-

2019.10.04 21:07 조회수 68

또 같은 꿈이다.

며칠째 꾸고 있는 꿈.

윌리엄은 밤의 설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쌓인 눈이 쏟아지는 달빛을 반사하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겨울의 추위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있으면 저만치 먼 어두운 숲속에서 한 사나이가 걸어 나왔다.

그의 옷은 세월에 낡고 헤졌으며, 오랜 세월 면도를 하지 못한 것인지 그의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했다.

설원으로 나온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한 차례 달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의 품에서 녹슨 단지를 꺼냈다.

그가 단지를 땅에 내려놓자 그 안에서 무언가가 슬금슬금 튀어나왔다.

뱀이었다. 머리가 삼각형인 것을 보니 독사인 것 같았다.

단지에서 나온 뱀은 쉬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그 사나이의 발목을 물었다.

발목을 물린 사나이는 그 자리에 쓰러져 물린 부위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생명이 떠난 듯 조용해졌다.

뒤이어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서 뱀의 꼬리를 잡아라.’


윌리엄은 눈을 떴다.

옆에서 여동생 벨이 곤히 자고 있다.

창밖에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새벽인 듯했다.

윌리엄은 언제나처럼 갑옷을 챙겨 입고 문 옆에 걸어둔 검을 허리춤에 찬 뒤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 얼굴에 부딪히는 새벽의 차가운 공기.

윌리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새벽의 찬 공기는 정말 기분이 좋지!”

“그렇지?”

뒤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윌리엄이 반갑게 인사했다.

“알렉시아! 일찍 일어났구나.”

“당연하지,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자경단 승급시험이니까 말이야.”

알렉시아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보였지만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윌리엄이 미소를 띠며 장난스레 말했다.

“매일 그렇게 일찍 일어나면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그 말에 알렉시아는 혀를 삐쭉 내밀며 테헤헷 웃었다.

“하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건 너무 힘든걸.”

“새벽마다 깨워줄까? 난 매일 이 시간에 일어나는데. 어때?”

이에 알렉시아는 손가락을 펴 윌리엄의 뺨을 찌르며 대답했다.

“안돼. 매일 새벽마다 우리 집에 오면 분명 오해 살걸?”

윌리엄은 살짝 찡그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우린 소꿉친구인걸? 소꿉친구를 매일 깨워주는 게 문제가 있는 거야?”

“소꿉친구이기 때문에 더 안되는 거야. 강 건너 생선가게 아저씨 알고 있지?

그 아저씨도 자기 소꿉친구랑 결혼했거든.”

그러자 윌리엄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이, 그건 그 아저씨 이야기고. 우리가 결혼할 일은 없을 거라는 것, 너도 잘 알고 있잖아? 하하하”

알렉시아의 발걸음이 멈췄다.

“무슨 일이야? 신에 돌이라도 들어갔어?”

“아니... 뭐, 별거 아냐.”

알렉시아가 왼손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꼬며 눈길을 하늘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윌리엄이 시시덕대며 말했다.

“화장실?”

“뭔 소리야!”

“농담이야.”

한참을 머뭇대던 알렉시아는 이내 무언가를 다짐한 듯 윌리엄의 어깨를 치더니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각하겠다! 어서 가자고!”

“어... 그래! 그렇네!”




“역시 안되나 봐...”

알렉시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경단에서 자신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 벌써 세 번째 시험을 보고 있건만 이번에도 합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윌리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말했다.

“그러게 평소에 열심히 하라니깐.”

알렉시아가 벌떡 일어나 윌리엄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합격자의 가르치는 듯한 말은 듣고 싶지 않아-!”

“아니, 합격자의 말이니까 들어야....”

알렉시아는 윌리엄의 말을 흘려들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정말 걱정이야. 나, 이대로 영영 제일 하위 랭크인 거 아닐까? 아냐, 이러다간 정말 자경단에서도 쫓겨나서 그냥 시골 아낙네가 되는 거 아닐까? 정말 그런 푸줏간 집 아주머니 같은 삶은 살고 싶지 않은데!”

윌리엄은 알렉시아의 푸념을 들으며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알렉시아가 물었다.

“윌리엄은 아무런 걱정이 없는 거야?”

“걱정?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걱정이긴 한데.”

윌리엄의 실없는 대답에 알렉시아는 짜증 내며 소리쳤다.

“아니! 그런 일상적인 고민 말고! 인생의 걱정! 그런 거 없는 거야?”

윌리엄은 자신에게 인생의 걱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려는 찰나,

한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아.”

“뭔가 있구나?”

알렉시아는 먹잇감을 찾은 고양이 마냥 두 눈을 반짝이며 윌리엄을 쳐다보았다.


“꿈... 요즘 같은 꿈을 연달아 꾸고 있어.”

“꿈?”

“응, 알렉시아, 너는 고작 꿈이 고민이냐며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알렉시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니. 난 비웃지 않아.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꿈은 신이 보낸 편지라고 하셨어.

더군다나 같은 꿈을 연달아 꾼다면 중요한 내용인 것이 아닐까?”

윌리엄은 당황했다.

“하지만 난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걸.”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신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신이 보낸 편지? 대체 그 신이란 건 누구란 말인가. 그리고 왜 하필이면 나에게 보냈단 말인가.

윌리엄은 괜히 마음이 찜찜해졌다.

“그럴까... 그럼 난 앞으로 어째야 하지?”

“그건 나로선 알 수 없어. 답은 네가 알고 있을 거야. 윌리엄.”

알렉시아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졌다.

진지한 알렉시아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윌리엄의 마음은 찜찜함을 넘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윌리엄은 이 기분 나쁜 불안함에서 벗어나고자 농담을 던졌다.

“자경단 시험도 그렇게 진지하게 하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알렉시아는 농담을 받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표정이 사뭇 더 진지해졌을 뿐이었다.

“윌리엄, 신이 보낸 메시지를 계속 무시하면 네 인생에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무시하면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그래. 신께서는 그런 거로 장난을 치지 않으실 테니까.”

윌리엄은 이 이상 꿈이 어쨌느니 하는 조언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 기분 나쁨으로부터 벗어나기만을 바랐다.

“알렉시아, 나 이제부터 마을에서 할 일이 있거든. 먼저 가볼게!”

알렉시아가 황급히 윌리엄을 불러 세웠다.

“어, 윌리엄! 나 아직 말 안 끝났는데...”

하지만 윌리엄의 귀엔 그녀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윌리엄은 그저 그 답답하기 그지없는 공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좋았다.

윌리엄은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마을에 가면 할 거리가 많이 있고, 그럼 이 꿈에 대해 잊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알렉시아는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 윌리엄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언을 듣기 싫어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네 뭐...”

“그래도 윌리엄, 네가 내 조언을 무시하지 않길 바라.”


마을에 도착하자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윌리엄을 불러 세웠다.

“어이! 윌리엄! 혹시 시간 있나?”

윌리엄은 잘됐다 싶어 얼른 대답했다.

“물론이죠! 남는 게 시간인걸요.”

그 대답에 아저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레스토랑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그런데 도와주지 않겠나?”

“오, 오늘도 장사가 잘되시나 보네요. 미하일 아저씨.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이웃인걸요!”

윌리엄은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레스토랑은 손님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여기 콩소메 수프 한 그릇 더 주세요!”

“저기요! 여기 비프 스튜 언제쯤 나올까요?”

윌리엄이 물었다.

“평소처럼 서빙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가능하다면 서빙에, 테이블 청소까지 해주지 않겠나?”

“물론 해드리지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기겁했을 부탁이지만 윌리엄은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는 원체 남을 돕기 좋아하는 윌리엄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바쁘게 일하면서 직전의 꿈 이야기를 잊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 시간 남짓이 지나자, 점심시간이 끝나고 식당에 여유가 찾아왔다.

미하일이 말했다.

“윌리엄, 오늘은 자경단 승급 시험 날이었지. 결과는 어땠지?”

윌리엄이 바닥을 닦으며 대답했다.

“그냥 평균이에요.”

미하일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것참 다행이군. 어쨌든 합격이라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네요!”

“그럼 이걸 가져가게.”

윌리엄이 고개를 들자 미하일이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윌리엄이 물었다.

“이건 무엇인가요?”

“열어보면 알게 될 걸세.”

윌리엄은 상자를 받아 열어보았다.

상자의 안에는 윤기가 반지르르한 초콜렛이 들어있었다.

윌리엄이 흥분하며 말했다.

“이건 프랄린이네요! 이 레스토랑 최고 인기 메뉴!”

“그래, 일 도와준 것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고, 네 시험 합격 선물이기도 하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내가 알기로 네 여동생 벨이 가장 좋아하는 것도 내가 만든 프랄린이지?

같이 나눠 먹으라고 많이 넣었네.”

그 말을 들은 윌리엄은 기뻐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미하일 아저씨!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하일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집에 돌아가게. 네 여동생이 널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걸세.”

“예!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가게를 나선 윌리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다시피 집으로 향했다.

그의 여동생 벨이 선물에 기뻐하는 모습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달려와 집을 바라보니 저 멀리 문 앞에 꼬마 여자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저건 벨이 틀림없어! 날 기다리고 있구나!”

윌리엄은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향해 쏜살같이 뛰어갔다.


윌리엄이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벨은 저 멀리 태양을 등지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윌리엄을 보았다.

이윽고 윌리엄이 집 앞까지 도착하자 벨은 한달음에 달려가 윌리엄의 품에 안겼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윌리엄은 벨을 꼭 끌어안으며 대답했다.

“안녕! 벨! 오늘도 잘 지내고 있었어?”

벨이 고개를 들어 윌리엄을 향해 앙증맞게 웃어 보였다.

“물론이죠! 저도 이제 10살인걸요!”

윌리엄은 벨이 또박또박 대답하는 것이 귀여워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라버니의 쓰다듬을 즐기던 벨의 시야에 문득 윌리엄이 들고 있던 상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오라버니, 그 상자는 무엇인가요?”

윌리엄은 상자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 이건 벨 주려고 가져온 선물이야!”

“선물인가요?!”

선물이라는 말에 벨의 양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 귀여운 모습에 윌리엄은 다시 한번 벨을 끌어안은 뒤, 상자를 열어 벨에게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아! 이건 미하일 아저씨 특제 프랄린이죠?!”

“와, 한 번에 알아보는구나?”

“좋아하는 거니까요! 고마워요! 오라버니!”

벨이 활짝 웃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윌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벨에게 상자를 넘겨주었다.

상자를 받아든 벨은 집으로 들어가려다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곤 말없이 뒤돌더니 다시 한번 윌리엄의 품에 달려들어 자신의 오라버니를 꼭 껴안았다.

윌리엄은 자신을 끌어안는 여동생의 약하지만 든든한 힘을 느끼며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여동생보다 더 귀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그날 밤, 윌리엄은 꿈을 꾸었다.

윌리엄은 밤의 설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쌓인 눈이 쏟아지는 달빛을 반사하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겨울의 추위를 머금은 차가운 바람.

윌리엄은 생각했다.

분명 이제 곧 저 어두운 숲에서 한 사나이가 나오겠지.

그리고 윌리엄의 생각대로 저만치 먼 어두운 숲속에서 한 사나이가 걸어 나왔다.

윌리엄은 또 생각했다.

이제 저 사나이는 달을 본 뒤 뱀이 들어 있는 단지를 꺼내겠지.

그리고 윌리엄의 생각대로 설원으로 나온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한 차례 달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그의 품에서 녹슨 단지를 꺼냈다.

그가 단지를 땅에 내려놓자 그 안에서 뱀이 나왔다.

윌리엄은 다시 생각했다.

이제 저 뱀이 저 가엾은 사나이의 발목을 물겠지.

단지에서 나온 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의 빛나는 달을 한 차례 쳐다보았다.

윌리엄은 당황했다. 약간이지만 꿈의 내용이 이전과 달라진 것이다.

하지만 뱀은 주위를 쉬이 둘러보더니 이내 사내의 발목을 물었다.

발목을 물린 사나이는 그 자리에 쓰러져 물린 부위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생명이 떠난 듯 조용해졌다.

윌리엄은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했다.

비록 중간 내용이 살짝 변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론 같은 내용이었으니 이제 뱀을 잡으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꿈이 끝날 것이라고.

그리고 윌리엄의 생각대로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서 뱀의 꼬리를 잡아라.’

윌리엄은 이제 꿈이 끝나겠다 싶어 느긋이 잠이 깨길 기다렸다.

하지만 윌리엄의 예상과는 달리 꿈은 계속되었다.

당황한 윌리엄의 등 뒤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서 뱀의 꼬리를 잡아라.’

하지만 윌리엄은 가지 않았다. 그저 꿈이 깨길 기다릴 뿐이었다.

독사의 꼬리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 리 없을뿐더러 굳이 잡으러 가지 않더라도 어쨌든 꿈은 곧 끝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뱀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윌리엄을 바라보았다.

뱀과 눈이 마주친 윌리엄은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윌리엄은 어서 이 꿈이 끝나고 이 두려움으로부터 구원받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뱀은 윌리엄의 그런 두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윌리엄에게 점점 다가왔다.


“흐억!”

윌리엄은 뱀에게 발목을 물리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윌리엄은 자신의 발목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하긴, 꿈에서 물린 상처가 현실에 있을 리가 없다.

윌리엄은 바보같이 꿈의 상처를 현실에서 허둥대며 찾은 자신을 비웃고는 옆에서 곤히 자고 있을 여동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귀여운 여동생을 보며 기분 전환을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식은땀을 흘리며 쌕쌕 거친 숨을 쉬고 있는 여동생이었다.


“벨!”

윌리엄은 여동생에게 달려들어 이마에 손을 대었다.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겁다.

몸에서 흐르는 땀은 이미 그녀의 옷과 이불을 축축이 적셨다.

벨은 마치 뜨거운 태양 빛에 녹고 있는 눈사람 같았다.

“의원.. 의원에... 아니.. 사제에게.. 아니 자경단 구호소에 가야 하나?!”

윌리엄은 충격에 판단이 서질 않았다.

사랑하는 존재가 죽어간다는 충격이 윌리엄을 급속도로 파괴해갔다.

충격은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했고, 심장의 도리깨질은 신경을 타고 올라가 뇌를 마비시켰다.

윌리엄은 벨을 등에 업고 정신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든 좋았다. 여동생을 살릴 수만 있다면 불구덩이라도 뛰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윌리엄은 가까운 의원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때는 이른 새벽, 문이 열려있을 리 없었다.

윌리엄은 뒤이어 자경단 구호소, 수도원, 심지어 돌팔이 의사가 사는 뒷골목에까지 찾아갔으나 그를 위해 문이 열린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윌리엄은 절망에 고개를 휘저었다.

이전부터 여동생 앞에서는 울어 본 적이 없는 윌리엄이었지만, 울음이 그의 목 부근까지 차올라왔다.

그사이 등 뒤의 벨의 쇠 긁는 듯한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윌리엄은 후회로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차라리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서 간호했으면 더 나았을 것을...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옷가지도 챙기지 못해 윌리엄도, 벨도 얇디얇은 옷차림이었다.

스산한 새벽 공기가 벨의 몸을, 생명의 불을 천천히 식혀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윌리엄은 마을 광장에 무릎 꿇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등에서 더는 숨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숨도 한없이 느려져 갔다.

그는 무거워져 가는 등 뒤의 무게를 느끼며 연약했던 삶의 의지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그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가서 뱀의 꼬리를 잡아라.”

그는 힘없이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 사나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윌리엄은 그를 무시하고 그대로 죽을까 했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꿈 내용을 아는 사나이에 대해 궁금해졌기에 대화해보기로 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떠도는 자네.”

“떠도는 자께서는 어찌 제 꿈 내용을 아시고 계신 겁니까?”

“나는 떠도는 자이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저와 제 사랑이 살 방법도 알고 계십니까?”

“물론일세.”

“저는 이미 그녀가 무거워졌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아무 상관이 없네.”

윌리엄은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사나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저와 제 사랑이 살 수 있겠습니까?”

“가서 뱀의 꼬리를 잡게.”

윌리엄은 어이가 없었다. 결국 또 꿈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윌리엄은 이것 말고는 다른 희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참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뱀의 꼬리를 잡으면 살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네. 뱀의 꼬리를 잡으면 사는 것은 물론이고 자네의 미래 또한 창대해질 걸세.”

“정말 그렇다면 잡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나이는 조용히 미소를 띠었다.

윌리엄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뱀이 없습니다. 꿈을 꾸러 자러 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럴 필요 없네.”

“그렇다면 어떻게 뱀을 잡을 수 있겠습니까? 말씀드렸듯 이곳에는 뱀이 없습니다.”

“자네의 발목을 보게.”

윌리엄이 자신의 발목으로 시선을 내리자 꿈에서 봤던 독사가 자신의 오른 발목을 물고 있었다.

느닷없는 뱀의 등장에 윌리엄은 깜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독사의 꼬리를 잡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뱀은 일자로 쭉 펴지는가 싶더니 이내 한 줌의 흙이 되어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에 놀란 윌리엄이 사나이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건 앞으로 일어날 일이네.”

“제가 뱀에 물리는 것입니까?”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자네도 이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자네의 사랑도 이전처럼 세상에 사랑과 행복을 뿌릴 수 있을 것이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해시켜 주십시오.”

사나이는 윌리엄을 향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신께서 네게 맡긴 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게. 자네가 이를 믿은 이상,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흘러갈 걸세.”

말을 마친 사나이는 동이 트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윌리엄도 사나이를 따라 하늘을 보는 순간, 강한 섬광이 번쩍여 윌리엄의 눈을 감겼다.


윌리엄이 다시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윌리엄은 벌떡 상체를 일으켜 자신의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윌리엄의 눈에 식은땀을 흘리며 쌕쌕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여동생이 보였다.

윌리엄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여동생의 옷을 갈아입힌 뒤, 새 이불에 눕혔다.

그리고 윌리엄은 테이블 앞에 앉았다.

업무로 인해 브리크리덴의 수도인 브릭에서 따로 사는 부모님께 벨의 건강에 대해 편지를 쓰기 위해서였다.

한참 편지를 쓰고 있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윌리엄!! 늦잠 자는 거야?”

목소리를 들으니 문을 두드린 건 알렉시아인 듯했다.

윌리엄은 문을 열고 알렉시아를 맞았다.

“반가워, 알렉시아.”

알렉시아는 별일 없다는 듯 능청스럽게 인사하는 윌리엄을 보곤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허, 반갑다니... 훈련 안 갈 거야? 이대로라면 지각한다고...”

윌리엄은 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동생이 아파서 한동안 훈련에 참여 못 할 것 같아. 어쩌면 앞으로는 나, 자경단에 나가지 않을지도 모르고.”

알렉시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이내 알렉시아는 윌리엄을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윌리엄. 자경단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까...

그리고, 여동생 벨에 대해서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을 거야.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도 그럴 게 우린 오랜 소꿉친구잖아? 윌리엄, 네 사정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비록 네 부모님은 바쁘셔서 여기 안 계시지만 우리가 함께 힘내면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윌리엄도 자신을 끌어안은 알렉시아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고마워, 알렉시아. 너는 정말 좋은 친구야. 내 이 은혜는 꼭 갚을게. 정말 고마워.”

윌리엄과 알렉시아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한동안 그대로 끌어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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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열심히 썼는데 갑자기 로그인 해야한다면서 게시물 날려버리네요.

와, 화가 납니다.


각설하고... 하.. 언제 다시 쓰지...



알렉시아는 윌리엄의 소꿉친구입니다.

윌리엄은 어려서부터 양친이 브리크리덴의 수도인 브릭에 일을 하러 떠났기에 핑귀시아에서 소년가장처럼 여동생을 키우며 자랐습니다. (덕분에 윌리엄과 벨은 서로를 매우 사랑한답니다.)

(위 그림에서 별표 쳐진 곳이 윌리엄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고향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런 윌리엄을 옆에서 도와준 것이 알렉시아입니다.


알렉시아는 매우 활달한 여성이에요.

윌리엄과 동갑이며, 흑발 단발머리에, 구릿빛 피부, 그리고 노란 눈을 가지고 있답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수련만큼은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음, 그리고 어쩌면 알렉시아는 소꿉친구인 윌리엄을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알렉시아는 처음엔 남자인 '펠릭스'라는 캐릭터로 기획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자인 알렉시아 쪽이 더 스토리가 매력적이게 되는 것 같아 바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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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StewartPortia, #당신의_곁에_있어도_될까요, #아르노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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