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나우르 북쪽, 위브릴 최전방에서

2019.09.29 09:50 조회수 124

본래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 그가 이곳에 머무른지 어느덧 보름이 다 되어간다. 최전방이자 국경선인 이곳은 혼란 그 자체이며, 시시각각 영토가 바뀌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어제 연합의 땅이었던 곳이 오늘 마물에 집어삼켜졌다. 사령관들의 늘어가는 흰머리가 현 전쟁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그와 오랜 면식이 있는 나우르의 레이븐 장군 역시 그러했다.

"오랜만이군, 2년쯤 되었나?"

"아, 제른하르트씨. 오랜만입니다. 당신이 이 전선에 계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 벌써 보름째 이러고 있군. 전선이 이곳만 있는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전 가장 정신없는 곳은 이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우르니까요."

"음. 나우르니까."

둘 모두 나우르 출신이기에 동의하는 말이었다. 놀라울 만큼 호전적이며 강한 이곳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평범하게 죽는걸 마물 수천마리에게 둘러싸여 고문당하며 죽는것보다 더 두려워 하는 자들이었다. 모두가 그러진 않겠지만 다른 지역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것이라는 것에 대해 그들은 이견이 없었다.

"못 본 사이에 나이가 꽤 많아졌군. 지금 얼마나 되었나?"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났습니다. 서른 넷이지요."

그는 이 말을 듣고 꽤나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가 34세나 되었다는 사실에 놀란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의 주름과 흰머리의 수는 족히 마흔은 되어야 볼 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노안이 되었다는 말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 곧 있으면 널 나랑 동년배로 보는 사람도 있을것 같군."

레이븐은 쓴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제가 일반 병사였다면 이 목숨 다해 싸우다 죽으면 되는 일이겠지만... 이 지휘관이라는 지위가 절 그렇게 할 수 없도록 하더군요. 왜 당신께서 이런 직책을 거절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음... 꼭 내가 떠맡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미안하다고 말해야겠나?"

"아뇨, 사과를 듣기 위해 한 말은 아닙니다. 진심으로, 이 직책이 마음에 들진 않거든요.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겠죠."

그 말에는 제른하르트도 쓴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저버리고 떠난 자'가 되기 때문이었다. 마침 그때 울린 경보에 그는 이 화제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담은 이정도로 하지. 손님들이 오신 모양이야."

"그러게요. 그 손님들이 제가 이곳에 온 첫날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방문해주시는 망자와 마물 군단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들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저 멀리 해가 가라앉는 지평선에서 마물의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른하르트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동감이네만, 뭐 어쩔수 없지 않겠나?"

"하...전군 전투 위치로! 오늘 자기는 글렀군요."

한숨을 내쉬며 레이븐은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의 주름이 또 하나 늘어난 듯 했다.

"나도 돕지.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빌자고."

그렇게 말하며 제른하르트는 무장을 끝낸 채 지휘석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최전방으로 뛰어갔고, 레이븐은 그런 그를 부러운듯이 쳐다보았다. 앞서 그들이 동감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나우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어떤 망자가 머리가 팔이 하나 없고 어떤 마물이 머리가 세개 달렸는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 적들을 마주하며, 협곡에 제른하르트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오늘 밤은 꽤 길어질 것이다.


#아르노셀글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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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mages 라게시리아
    강하다 나우르!
    2019.09.29 23:28
  • images 긴린
    나우르 인간들은 좋겠네. 믿음이있어.
    2019.09.29 10:17